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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재교 노동자와 봄의 황사거리 가두 투쟁 보고서..
    하이닉스2005 2021. 6. 2. 23:13

     

     

    신재교 노동자와 봄의 황사거리 가두 투쟁 보고서.. [청주기별] 신재교 노동자와 봄의 황사거리 가두 투쟁 보고서.

    2005년 4월  김창규 독자기자



    오늘 일찍 교회를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이닉스 매그나칩 노동자들의 가두행진대를 만났다. 맨 앞에는 신재교 하이닉스 매그나칩 노조위원장이 펼침 막을 들고 행진의 선두에 서 있었다. 진압경찰들은 눈에 띄지 않았고 의경들이 줄잡아 30-40명이 뒤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민주노총 가두선전 차량에서는 지난 4월1일 강경진압한 경찰의 진압에 많은 노동자들이 부상하고 다쳤다며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하이닉스 가두시위대는 상당공원에서 집결하여 뒷길로 해서 도청 정문 앞으로 행진을 하고 있었다. 양쪽에 금소노련의 청색깃발이 펄럭인다. 노동자들은 지난 싸움에 많은 부상들을 입고 몸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한다. 젊다고 하더라도 방패와 진압봉에 맞으면 며칠을 끙끙 앓아야 한다. 글을 쓰는 필자도 맞아 본 경험이 있다.

    오늘의 시위는 경찰의 무력진압에 대한 항의 시위인것이 분명하였다. 동부서, 서부서 정보과 형사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은 연신 무전기로 교신하고 있었으며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태가 심각함을 미루어 짐작 할수 있었다. 가족들도 눈에 뛰었는데 상당공원에서 지방노동청 까지는 상당한 거리이다.

    하이닉스 항의시위대는 2시30분부터 6시 퇴근 시간까지 거리를 서서히 행진하며 그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길가에 시민들도 그들의 억울함을 아는지 모두다 안타까워 한다. 나는 신재교 노조위원장과 중간중간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사진기를 들고 무거운 가방을 걸치고 따라가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가 100일이 되는 날이라 문화제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시내의 교통은 도청에서부터 6거리를 지나 꽃다리에서 중간중간 쉴 때 마다 교통은 말할 수 없이 혼잡했으며 그래도 불평불만 없이 버스들이 움직였다. 자가용 탄 사람들이야 불평을 하겠지...시내는 차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좀처럼 소통이 어려웠다. 경찰도 참는 눈치다 안참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을 또 진압할 것인가? 오늘 만큼은 경찰 진압차량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기한 일이다.

    내가 안면 있는 경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이 사건이 평화적으로 빨리 해결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전경은 어떻게 훈련 시켰길래 아버지나 형님 같은 분들을 사정없이 개 패듯 패고 짖밟을 수 있는가? 독이 올랐다니 무엇 때문에? 가혹한 훈련 탓은 아닐까? 그 젊은이들이 국방의 의무를 하려면 전방에 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전경들이 노동자들을 사람으로 생각지 않는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내가 목사이지만 나도 시위대 안에 있으면 그렇게 맞고 피를 흘리게 되리라.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국민이 적이면 전경은 일본사람이나 미국사람인가? 이제 이런 진압 방법으로는 먹히지 않는다. 정말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 부정부패한 공무원, 사리사욕에 눈 어두운 정치인, 노동자는 죽거나 말거나 자기 밖에 모르는 기업인 이런 사람들은 옹호하는 것이 경찰은 아닐 것이다. 누누히 하는 말이지만 경찰도 인간이고 국민이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움직인다. 계급장만 높으면 보이는 것이 없는가 보다.

    신재교 노조위원장은 상당히 피곤해보였다. 며칠은 병원이나 아니면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 것인가? 요즘 생계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웃는다. 아마도 아주머니들이 돈을 벌러 어딘가 일하러 다닐것이다. 그들의 딸린 선한 가족들, 10-15년 하이닉스 기업을 위해서 일한 그들은 한국 경제를 살린 사람들이다. 경제를 망친 장본인들이 정치를 하는 나라. 국회의원들은 뒷짐 지고 구경하는 나라. 이런 한심한 나라 의원나리들은 지금 이 시간에 국사를 논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나는 신재교 노조위원장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 정말 힘도 없는 목사 한 사람이 기도 밖에 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말했다. 여러분이 원하면 아니 원치 않더라도 나는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 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고 말 한다. 황사가 자욱한 하늘에 달처럼 해가 떠 있다. 개나리 꽃들은 꽃다리 아래로 줄지어 피어 있다. 자전거를 타고 그리고 걷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여유로운 오후 시간이다.

    신위원장에게 나는 하이닉스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 것을 요청했다.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안되면 직접 시민들에게 정치적 해결을 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경실련, 참여연대, 민예총, 여민회, 환경운동연합, 이런 단체들이 함께하여 문제를 풀어가자고 제안해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하이닉스 그 구석에서 더 이상 어떤 천막 농성도 효력이 없으니 다른 방도를 강구해보라고 충동질도 해본다. 쓸데없이 김목사가 참여하는 것 같다. 금년 우진교통 싸움의 경험으로 보거나 원흥이 방죽 싸움을 생각할 때 시간은 좀더 걸릴지 아니면 조기에 해결 될지 알수는 없으나 반드시 승리 할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줄곳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며 신재교 위원장의 이야기도 듣고 내 이야기도 한다. 힘 없는 목사 한 사람의 기도가 모세처럼 그렇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가나안 땅은 보이는데 그 곳에 들어갈 사람은 없다. 우리가 가는 길이 그렇게 험한 길이라면 따라가지도 않겠지만 홍해바다가 열리고 기적처럼 만나도 내리고 그래서 하이닉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장으로 원대복귀 한다면 나는 끝까지 따라가얀 한다. 광야에서 방황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내 인생의 언덕보다 이들의 언덕이 더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연행되어 죽도록 매도 맞아보았고 간첩으로 엮으려 수작을 해도 끝까지 버틴 사람이다. 광주항쟁 때는 그 사건에 연루되어 한달 보름 가량을 조사 받으며 경찰서 계엄 합수부 지하실을 오고 갔다. 급기야 감옥의 독방에서 빈대와 싸우며 80년을 보냈다. 대전경찰국 지하실, 안기부 지하실, 보안대 지하실에서 받은 수사로 나는 한동안 후유증으로 글을 쓰거나 일기를 쓰지 못했다. 지금까지 일기를 쓰지 않고 산다.

    하이닉스 노동자들이여! 강철이 어떻게 단련되는가? 그것을 생각해보라. 소설 책으로도 나와있다. 나는 내 후배들, 삶의 동반자들이 체게바라 평전을 읽겠다고 하여 속으로 웃었다.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젊은이들은 그의 초상화 티를 입고 다닌다. 체게바라 붐이다. 오늘 하루 하이닉스 노조원들을 따라다니며 나는 맥칼없이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을 모두 찍어가도 데스크에서 다 실어 줄것도 아닌데 말이다. 참으로 한심한 청주기별 독자기자다. 속으로 '병* 돈 나오는 일이나 해라.' 그렇게 비웃는 어떤 이의 얼굴이 스쳐지나 간다.

    신재교 위원장의 수염이 바람에 떨린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인상적이다. 그의 웃는 하얀 치아가 빛난다. 나는 썪은 이빨의 아픔을 안다. 그 것을 빼내지 않으면 몇날 며칠 아플 것이다. 아니 잘못되면 틀니를 해야한다. 살구꽃이 피고 매실꽃이 피고 진달래가 피고 온갖 봄꽃이 다투어 피는 계절이다. 꽃구경이나 가는 건데 또 된통 걸렸다. 하나님은 왜? 나를 하이닉스매그나칩 노동자들에게 인도하려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그냥 지나가면 그만인데...쯔쯔 칠칠하기는 또 농성장에 가겠구먼....나는 속으로 내 자신을 한탄 한다. 신재교 위원장은 나를 보고 알수 없는 의미의 웃음을 웃는다. 노동사무소 앞에서 대외협력위원장을 만났다. 경실련, 참여연대에 가서 도와 달라고 호소하고 오는 길이란다.

    노동사무소 무엇하는 곳인가? 노동자의 생존과 안위를 위해서 일하는 곳인가? 한심하다. 오줌을 누러 그곳에 들어갔더니 피둥피둥 쌀찐 노동사무소 직원들 중 하나가 하는 말 '대충 하란다.' 거기에 낮 모를 어떤 풋내기 한데 하는 말이다. 사무소 안에는 전경이 가득차 있었다. 무궁화 1개, 무궁화 2개, 무궁화 3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나는 오후를 노동자들 꽁무니만 따라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노동자 부상자 70여명, 전경부상 40여명, 누가 책임질 것인가? 실명할 확률 부상자 2명, 그리고 허리 손목, 온몸이 안쑤시는데가 없는 사람이 100여명 노동자 환자들이다. 화장실에서 노동자가 하는 말 죽고 싶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다.

    나도 그랬지, 고문을 받으면서 차라리 죽는게 났다고...그러나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살아야 한다. 제발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마시길.....부탁 또 부탁.....드린다. 가난해도 저승보다는, 힘 없어도 지옥보다는, 여기가 천국이고 주님이 살아 계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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